어포던스, 환경이 행동을 유도하는 조건

어포던스

어포던스 개념 상징 이미지

문 앞에 서서 밀어야 할지 당겨야 할지 잠깐 망설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손잡이 모양이 자연스럽게 알려줬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물건이나 공간이 스스로 이렇게 쓰라고 알려주는 성질을 어포던스(affordance)라고 부릅니다. 의지력을 발휘해 행동을 바꾸려 하기 전에, 환경 자체가 신호를 제대로 보내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 개념은 늘 그대로 통하지는 않습니다. 언제 작동하고 언제 어긋나는지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건이 말없이 행동을 알려주는 자리

심리학자 제임스 깁슨은 1977년 발표한 논문 The Theory of Affordances에서 이 단어를 처음 제시했고, 1979년 저서 「시지각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을 통해 개념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깁슨이 말한 어포던스는 사람이 그것을 알아차리든 아니든 물건과 생물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뜻합니다. 계단의 널찍하고 평평한 디딤판은 사람의 몸무게와 걸음 폭에 맞아 저절로 밟고 오르게 됩니다. 의자는 앉는 자세와 다리 길이에 맞아 앉게 됩니다. 이런 관계가 뚜렷하고 경쟁하는 다른 신호가 없을 때, 어포던스는 별다른 설명 없이 작동합니다. 현관 앞에 운동화를 내놓거나 책상 위에 물통을 놓아두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물건이 눈에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으면, 그 자리에 맞는 행동이 뒤따르게 됩니다.

신호와 실제가 어긋나는 자리

도널드 노먼은 1988년 저서 「생활 속의 심리학」(원제 The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에서 깁슨의 개념을 디자인 분야로 가져왔습니다. 그는 물건이 실제로 가진 가능성과, 사람이 보고 짐작하는 가능성이 항상 같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노먼 도어입니다. 손잡이 없이 평평한 금속판만 달린 문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판은 흔히 미는 동작을 연상시키지만, 그 문이 실제로 당겨야 열리는 구조라면 사람들은 반복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밀게 됩니다. 노먼은 이런 혼동이 디자인 업계에서 되풀이되자 2013년 개정판에서 시그니파이어(signifier)라는 말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PUSH라는 글자나 손잡이 모양처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를 가리킵니다. 물건이 가진 실제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신호는 별개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신호가 없거나 잘못 놓이면 물건 자체의 가능성과 무관하게 사람은 헤매게 됩니다.

내 환경의 신호를 점검하는 법

이 구분은 일상에서 환경을 바꾸려 할 때 그대로 적용됩니다.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물건이 있다면, 그것이 눈에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과일 그릇을 식탁 위에 두고 과자를 보이지 않는 서랍에 넣어두면, 두 물건의 가능성은 그대로여도 눈에 띄는 쪽의 행동이 앞서게 됩니다. 반대로 줄이고 싶은 행동이 있다면 그 물건의 신호를 지우거나 자리를 옮기는 쪽이 의지로 참는 것보다 잘 통합니다. 스마트폰을 눈앞에 두면 켜고 싶은 신호가 계속 오지만, 다른 방에 두면 그 신호 자체가 사라집니다. 스스로 만든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규칙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규칙을 실행할 자리에 신호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모 앱을 아무리 마음에 들어 해도 자주 여는 화면에 없으면 손이 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책상, 부엌, 스마트폰 화면처럼 매일 지나치는 자리를 하나씩 살펴보면 두 종류의 물건이 섞여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하려는 행동과 어긋나는 신호를 보내는 물건과, 그 행동과 나란히 가는 신호를 보내는 물건입니다. 이 둘을 구분해 자리를 바꾸는 작업은 규칙을 새로 정하는 것보다 품이 덜 들면서도 효과는 오래갑니다. 결국 행동을 바꾸는 가장 손쉬운 지점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신호를 다시 배치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어포던스는 의지를 대신해 주지 않지만, 신호가 제자리에 놓여 있을 때는 의지를 덜 쓰고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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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어포던스와 넛지는 같은 개념인가요

다릅니다. 어포던스는 물건과 사람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행동의 가능성을 가리키는 개념이고, 넛지는 그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고르도록 선택지의 배치를 설계하는 방법입니다. 어포던스가 더 넓은 개념이며, 넛지와 시그니파이어는 그 가능성을 실제로 전달하는 구체적인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노먼 도어 같은 문제는 왜 아직도 흔한가요

디자인 과정에서 겉모습을 우선하다 보면 손잡이 같은 시그니파이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이 실제로 밀리는지 당겨지는지는 그대로여도, 그것을 알려주는 표시가 없으면 사람들은 매번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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