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필기해야 시험 성적이 더 잘 나온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실처럼 통용되어 왔습니다. 그 근거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2014년 심리학 학술지 《사이콜로지컬 사이언스》에 실린 한 실험입니다. 그런데 이 실험을 그대로 재현한 후속 연구들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현 연구가 쌓이면서 필기 도구 자체보다 더 크게 작용한 것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21년과 2019년, 두 번의 재현이 가리킨 결론
미국 터프츠대학교 헤더 어리(Heather Urry) 연구팀은 2021년 《사이콜로지컬 사이언스》 32권 3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노트북 필기자 74명과 손필기자 68명, 총 142명을 대상으로 2014년 원 실험(연구 1)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노트북 필기자가 손필기자보다 더 많은 단어를 받아 적었고 강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비율도 더 높았지만, 강의 직후 치른 퀴즈 성적에서는 두 집단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이 비슷한 실험 여덟 건을 함께 분석한 메타분석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되었습니다. 2019년 케이틀린 모어헤드(Kayla Morehead) 연구팀이 《에듀케이셔널 사이콜로지 리뷰》에 발표한 재현·확장 연구 역시, 손필기와 노트북 필기에 더해 스타일러스로 쓰는 이라이터 조건까지 비교했지만 세 집단의 성적이 일관되게 갈리지 않았고, 필기 없이 강의만 들은 집단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연구는 어느 필기 방식이 우월한지 결론짓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정리했습니다. 두 재현 연구를 함께 보면, 2014년 연구가 남긴 인상만큼 필기 도구 자체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가고 있는 셈입니다.
2014년 연구가 실제로 주목한 것은 받아쓰기였다
2014년 프린스턴대학교 팸 뮐러(Pam Mueller)와 UCLA 대니얼 오펜하이머(Daniel Oppenheimer)가 발표한 원 실험에서는 단순 사실 확인 문항의 성적은 두 집단 사이에 차이가 없었지만, 개념을 응용해야 하는 문항에서는 손필기 집단의 점수가 더 높았습니다. 연구팀이 그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필기 도구 자체가 아니라, 노트북 필기자들이 강의를 들으며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으려는 경향이었습니다. 이 설명은 언론 보도를 거치며 손으로 써야 기억에 남는다는 단순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퍼졌습니다. 이 논문은 세 건의 실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세 실험에 걸쳐 노트북 필기자가 개념 응용 문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을 보이는 흐름이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1978년 제시된 생성 효과가 가리키는 실천
정보를 그대로 읽거나 옮겨 적을 때보다 스스로 다시 만들어 낼 때 더 잘 기억된다는 원리는, 심리학자 노먼 슬라메카(Norman Slamecka)와 피터 그래프(Peter Graf)가 1978년 《저널 오브 익스페리멘털 사이콜로지: 휴먼 러닝 앤드 메모리》에 발표한 다섯 건의 실험을 통해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라는 이름으로 이미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참가자에게 ‘DOG-CAT’처럼 짝지어진 단어를 그대로 읽게 한 조건과, ‘DOG-C’처럼 첫 글자만 제시하고 나머지 단어를 스스로 채워 넣게 한 조건을 비교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스스로 빈칸을 채운 조건이 그냥 읽은 조건보다 이후 회상 검사에서 더 높은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원리를 따르면 필기 도구가 펜인지 키보드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납니다. 강의에서 들은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자신의 언어로 요약하거나 질문 형태로 바꿔 적는 쪽이 생성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어 한 문단 분량의 설명이 끝날 때마다 그 내용을 한 문장으로 직접 요약하거나, ‘왜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 답을 적어 보는 방식이 이에 해당합니다. 결국 노트북과 펜 가운데 무엇을 고르느냐보다, 들은 내용을 한 번 바꿔 쓰는 습관이 필기의 효과를 가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손글씨로 필기해야 한다는 말은 틀린 것인가요?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2021년과 2019년의 재현 연구에서는 손필기와 노트북 필기 사이에 성적 차이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았고, 필기 도구보다 받아 적는 방식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노트북으로 필기하면 효과가 떨어지나요?
도구 자체보다 강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노트북으로 필기하더라도 요약하거나 질문 형태로 바꿔 적으면 생성 효과가 작동합니다.
생성 효과는 필기에만 해당하는 원리인가요?
아니요. 슬라메카와 그래프가 1978년 제시한 생성 효과는 기억 전반에 관한 원리이며, 필기는 그 원리가 적용되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출처
- Slamecka, N. J., & Graf, P. (1978). The Generation Effect: Delineation of a Phenomenon.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Learning and Memory, 4(6), 592-604.
- Mueller, P. A., & Oppenheimer, D. M. (2014).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Advantages of Longhand Over Laptop Note Taking. Psychological Science, 25(6), 1159-1168.
- Urry, H. L. et al. (2021). Don’t Ditch the Laptop Just Yet: A Direct Replication of Mueller and Oppenheimer’s (2014) Study 1 Plus Mini Meta-Analyses Across Similar Studies. Psychological Science, 32(3), 326-339.
- Morehead, K., Dunlosky, J., & Rawson, K. A. (2019). How Much Mightier Is the Pen than the Keyboard for Note-Taking? A Replication and Extension of Mueller and Oppenheimer (2014). Educational Psychology Review, 31(3), 75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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