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러지, 마찰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슬러지, 마찰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슬러지는 정기 결제를 해지하려다 화면을 몇 번이나 넘겨야 하거나 운동화를 신기까지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할 때처럼, 원하는 행동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마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목표를 지키지 못한 이유를 의지 부족에서만 찾다 보면, 정작 행동과 나 사이에 놓인 이런 저항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포기한 이유를 의지에서만 찾을 때

습관을 지키지 못하거나 목표를 중간에 놓았을 때, 사람들은 흔히 그 원인을 의지력 부족에서 찾습니다. 자기계발 콘텐츠도 대체로 결심과 동기부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왔습니다. 그런데 행동경제학 연구자들은 실패의 상당 부분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행동 앞에 놓인 절차와 단계, 즉 마찰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서류, 클릭 수, 대기 시간처럼 사소해 보이는 장벽이 실제로는 결과를 갈라놓는다는 것입니다.

슬러지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

이 저항에 슬러지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리처드 탈러입니다. 탈러는 2018년 8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글 ‘넛지가 아니라 슬러지(Nudge, not sludge)’에서 이 개념을 다듬었습니다. 이어 캐스 선스타인이 2019년 논문 ‘슬러지 감사(Sludge Audits)’에서 슬러지를 정당화되지 않은 채 시간과 비용을 소모시키고 사람들이 필요한 것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마찰이라고 설명했고, 2021년 저서 「슬러지: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는가(Sludge: What Stops Us from Getting Things Done and What to Do About It)」(MIT Press)에서 이를 체계적인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넛지가 선택은 그대로 둔 채 좋은 행동을 더 쉽게 만드는 설계라면, 슬러지는 그 반대편에서 원하는 행동을 더 어렵게 만드는 설계입니다.

왜 마찰은 눈에 잘 띄지 않았나

넛지는 책과 정책 사례로 널리 알려졌지만, 슬러지는 상대적으로 최근에야 이름이 붙어 개인의 실패로 오인되기 쉽습니다. 게다가 슬러지는 항상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휴대폰 홈 화면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SNS 앱을 두거나, 운동 가방을 옷장 안쪽 깊숙이 넣어 두는 것도 자기 자신이 만든 슬러지입니다. 이 개념은 지금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2026년 오사카대학교 연구자 카이보 탕이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비헤이비럴 이코노믹스에 발표한 논문은 디지털 공공서비스의 마찰을 평가하는 틀을 제시하면서, 근거 없이 접근을 막는 마찰을 별도로 마찰쓰레기(슬러지)라는 항목으로 분류했습니다. 정책과 서비스 설계 영역에서 이 개념이 여전히 다듬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항을 옮기는 두 방향

실제로 적용할 때는 두 방향으로 나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고 싶은 행동 앞의 슬러지는 걷어내고, 피하고 싶은 행동 앞에는 슬러지를 새로 쌓는 방식입니다. 아침 운동을 늘리고 싶다면 운동복을 전날 밤 침대 옆에 꺼내 두어 단계를 줄이고, 잠들기 전 SNS 사용을 줄이고 싶다면 로그아웃을 해 두거나 휴대폰을 다른 방에 두어 단계를 늘리는 식입니다.

구독 해지처럼 외부에서 오는 슬러지는 해지 가능일을 캘린더에 미리 적어 두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대응됩니다. 마찰을 없애는 일과 새로 쌓는 일은 결국 같은 원리에서 나온 설계이며, 그 효과는 어떤 행동에 적용하느냐와 실행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슬러지와 넛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넛지는 선택지를 그대로 둔 채 좋은 행동을 더 쉽게 만드는 설계이고, 슬러지는 반대로 서류나 단계, 대기 시간처럼 불필요한 저항을 더해 행동을 어렵게 만드는 설계입니다. 캐스 선스타인은 슬러지를 넛지의 반대편에 있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슬러지라는 용어는 누가 처음 썼나요?

리처드 탈러가 201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글에서 이 용어를 다듬었고, 캐스 선스타인이 2019년 논문 ‘슬러지 감사’와 2021년 저서 「슬러지」를 통해 체계적인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슬러지 줄이기를 개인 습관에도 적용할 수 있나요?

원래는 정책이나 서비스 설계에서 주로 다뤄지던 개념이지만, 원하는 행동 앞의 단계를 줄이고 피하고 싶은 행동 앞에 단계를 더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환경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효과는 개인의 상황과 실행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Thaler, R. H. (2018). Nudge, not sludge. Science, 361(6401), 431.
  • Sunstein, C. R. (2019). Sludge Audits. Behavioural Public Policy.
  • Sunstein, C. R. (2021). Sludge: What Stops Us from Getting Things Done and What to Do About It. MIT Press.
  • Tang, K. (2026). Justification as a revisable state: a behavioral risk–friction fit framework for digital public services. Frontiers in Behavioral 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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